[사건을 보다]층간소음 흉기 난동…시민 보호 외면한 경찰

2021-11-20 1



지난 1월 11일은 그의 50번째 맞는 생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족과의 저녁식사도 미룬 채 일과시간 후에도 경찰서에 남아 사건 관련 CCTV를 돌려봤습니다.

그리고 밤 11시가 넘어 귀가하던 길, 그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울관악경찰서 여성청소년강력팀장이던 박성수 경위의 얘기입니다.

얼마전 인사혁신처는 박 경위의 순직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평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범인을 잡으면 사람을 구하고, 놓치면 또다른 피해자가 나온다."

박 경위 같은 사람이 있기에 우리는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민중의 지팡이'란 의미를 의심케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Q1. 층간소음 문제로 불거진 살인미수 사건 얘기입니다.
조금 전 리포트에서 경찰의 신변보호 대응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는데, 이 사건에서도 경찰의 대응이 논란이네요?

지난 15일 오후 5시쯤, 인천의 한 빌라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4층에 살던 40대 남성이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던 아랫집 주민에게 흉기를 휘둘렀는데,

60대 가장을 비롯해서 일가족 3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특히 목부위를 크게 다친 아내는 현재까지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문제는 사건 당시에 지구대 소속 경찰관 2명이 피해 가족들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 있었지만, 범행을 막지 못했다는 겁니다.

Q2. 어떤 일이 있었던 거죠?

경찰관들은 아랫집 현관문을 발로 차는 등 난동을 피우던 피의자를 일단 4층 자택으로 올려보낸 뒤에

피해상황을 듣겠다며 남성 경찰관은 신고자인 60대 가장과 빌라 밖으로 이동했고, 여성 경찰관은 아내, 그리고 딸과 함께 범행현장인 빌라 3층 복도에 있었습니다.

이 때 흉기를 챙겨 다시 3층으로 내려온 피의자가 아내와 딸을 향해 흉기를 휘둘렀는데, 여성 경찰관은 현장에서 흉기난동 장면을 보고도 범행현장을 이탈했다는 게 논란의 핵심입니다.

경찰은 "여성 경찰관이 1층으로 내려간 건 무전으로 지구대에 추가 지원을 요청하면서 남성 경찰관을 부르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Q3. 경찰관이 범행현장을 이탈한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을까요?

빌라 밖에서 남성 경찰관과 얘기를 나누던 60대 가장은 아내와 딸의 비명소리를 듣고 곧바로 3층으로 뛰어올라갔습니다.

하지만 경찰관 2명은 지구대에 추가 인력 지원을 요청한다면서 또다시 시간을 허비했는데, 이 사이 공동 현관문이 닫혔고, 출입 비밀번호를 모르는 경찰관들은 이웃들이 현관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경찰관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범인은 이미 60대 가장에 의해 제압된 상태였습니다.

아무리 훈련을 받은 경찰관도 흉기를 든 피의자와 맞닥드리게 되면 긴장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60대 평범한 가장이 살인미수 피의자를 제압할 때 출동 경찰관들은 무엇을 했냐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Q4. 현장 대응 매뉴얼이라는 게 없는 겁니까?

있습니다.

매뉴얼의 제목이 "모든 피의자는 불시에 공격할 수 있다"입니다.

현장상황을 알 수 없는 경우엔 피습상황을 가정해서 권총과 테이저건, 방탄·방검복을 준비하고 용의자를 발견하면 한명은 정면에서, 나머지 한명은 측면이나 후방에서 접근하라고 돼 있습니다.

특히 용의자가 흉기를 소지했을 경우엔 권총이나 테이저건, 가스분사기, 삼단봉 등을 사용해서 제압하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번 사건의 경우엔 출동 경찰관들이 권총과 테이저건, 삼단봉을 소지하고 있었음에도 가장 중요한 범행현장을 이탈하면서 매뉴얼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Q5. 피해자 가족들은 경찰의 부실대응에 대해서 또다른 의혹을 제기했다면서요?

논란이 확산되자 인천경찰청은 청장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소극적이고 미흡한 사건 대응에 사과드린다" "철저한 감찰조사를 통해 해당 직원들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사건 이후 경찰이 가족들을 회유하고 협박했다"는 또다른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Q6. 경찰이 2차 가해를 했다는 거예요?

출동 경찰관들의 부실대응을 문제삼자 경찰 측이

"여성 경찰관이 1층으로 내려가서 지원요청을 빨리 했기 때문에 구조도 빨라진 것"이라면서 "의식불명에 빠진 피해자가 돌아가시지 않은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으라고 말했다"는 게 가족들의 주장입니다.

현재는 출동 경찰관 2명만 대기발령 조치된 상태입니다만, 감찰을 통해서 가족들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엔 관련자들의 추가 징계를 비롯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매뉴얼이 있으면 뭐하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사건을 보다, 최석호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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